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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대양 사건

by 몽이쓰 2020.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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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은 1987년 8월 29일 공예품 제조업체 ‘오대양’ 용인공장에서 사장과 종업원 등 32명이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으로, SBS 교양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방송에서는 오대양 사장 박순자의 얼굴이 공개됨과 동시에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오대양

 

 

사건의 발단은 박순자가 오대양이라는 사이비 종교 단체와 기업을 만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박순자는 1974년 횡격막에 병이 생겨 고통받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병이 회복되는 일을 겪었다고 주장합니다. 사이비 종교 특성상 거짓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데 어쨌든 박순자는 신 덕분에 병이 나았다고 믿었는지 신학교를 다니다가 여호와의 증인에 입교했고 기독교 복음침례회 소위 구원파에 출석하기도 했습니다.

 

박순자는 구원파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이탈하여 1984년 5월, 대전에서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사이비 종교 겸 회사인 오대양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오대양이라는 교명은 박순자가 "나는 오대양을 지배할 사람으로 앞으로 전 세계를 주관하게 될 것이다."라고 공언한 데서 나왔다고 합니다.

 

박순자

 

 

박순자가 대표로 있던 오대양 회사는 금속공예품으로 전도유망한 회사로,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한 최고급 보육 시설과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직원 자녀를 위한 학사를 무료로 지원하며 ‘꿈의 직장’을 표방했습니다.

 

먼저 1984년에 민속공예품 제조사 오대양을 만든 뒤, 그는 수입품 판매장을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민속 공예품 제조로 대통령상은 물론 88 올림픽 공식 협력 업체로 지정이 되면서 회사의 명성은 커져갔고, 이후 대전과 용인 등의 공장을 사들이며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또한 제조 사업뿐만 아니라 유치원과 양로원, 고아원 건물을 사들여 임대해 사회사업을 했습니다. 시설을 당시로선 최신식으로 꾸며 고아들을 잘 키우는 모습을 보였기에, 대전에선 오대양의 평판이 아주 좋았고 박순자는 성공한 여성 사업가이자 여성들의 워너비로 평판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신도들의 자녀를 고아로 위장하고 부모는 없고 너희는 고아이며, 박순자만이 진짜 어머니라고 아이들을 세뇌했으며 심지어 이들에게 부모를 찾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소리도 공공연히 했다고 합니다. 더불어 신도 및 그 자녀들을 집단으로 공동생활하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신도들을 사람답지 않게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매월 한 번씩 반성의 시간을 가졌는데 신도들은 한 달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실토하고, 규율을 어겼음이 드러나면 벌이라는 명목으로 가차 없이 집단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대양은 불미스러운 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한 부모가 큰 딸에게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찾아간 과정에서 오대양 신도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것이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사이비 교주였던 박순자는 자신을 따르는 채권자이자 채무자인 신도들과 집단 시설에서 함께 생활하며 17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사채를 빌려 쓰고 있었으며, 이 폭행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박순자는 쓰러진 뒤 경찰이 방심한 틈을 타 사라졌고 그와 함께 오대양 80여 명의 직원도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한 날 한 시에 사라진 이들에 대해 경찰은 대형 사기사건으로 판단, 수사를 시작한 지 닷새 만에 사라진 이들 일부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곳은 오대양 회사 공장의 천장이었습니다. 

 

천장에서 32구의 시신이 발견돼었는데 시신들은 두 곳에 나뉘어 겹겹이 쌓여 있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속옷 차림에 손과 발이 결박되어 있고, 목에는 뚜렷한 교살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명백한 타살이었지만 기이한 점은 누구도 저항의 흔적이 없다는 것. 또한 여기에는 박순자와 그의 세 명의 자녀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경찰은 누구에게 어떻게 죽임을 당한 것인지 수사에 나섰으나 부검 과정에서 어떤 약물도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사건 발생 며칠 후 현장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모두 예순일곱 개로 찢긴 하얀 종이쪽지였습니다. 몇 시간의 작업 끝에 복원된 쪽지에는 “절대로 입 닫아”, “이미 의식 없으시다”, “네 시간 전부터 5명 정도 갔다 죽였다”, “처음부터 계획하고 온 거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 부검 의사는 3구의 시체는 자살이 분명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박순자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교살(絞殺)에 의한 질식사가 분명하며, 누군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행해진 집단 타살극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집단 자살의 원인이나 자세한 경위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됐습니다.

 

그러다 1991년 7월 오대양의 신도였던 김도현 등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며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으나 여전히 집단 자살인지 타살인지 여부에 대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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