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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인간의 시대

by 몽이쓰 202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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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인간의 시대

2020년 방통위 방송대상을 수상한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1부 ‘닭들의 행성’은 이렇게 시작된다. 왜 닭들의 행성이 되었을까? 전 세계 230억 마리, 인류 한 사람당 3마리에 해당하는 개체수이다.

 

개체수로만 보면 지구는 닭들의 행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가 닭들의 행성이 된 까닭은 닭의 적극적 생존 의지 때문이 아니다.  코로나 19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바로 '인류세(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시대)' 이야기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를 주제로 한 EBS <다큐 프라임 - 인류세>를 '2020 방송 대상' 수상작으로 발표하고 위와 같은 선정 이유를 밝혔다.

 

다큐는 총 3부작으로 구성됐다. 1부 '닭들의 행성'은 230억 마리에 달하는 닭들이 결국은 인류를 대표하는 화석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담았다. 2부 '플라스틱 화석'은 처음 플라스틱이 만들어지게 된 '우연'부터 플라스틱 때문에 몸살을 앓는 지구의 현주소를 재조명한다. 3부 '안드레의 바다'는 어부를 꿈꾸는 소년 안드레를 통해 오염된 바다의 현주소와 암울한 미래를 비춘다.

 

다큐는 150여 분에 걸쳐 끊임없이 인간에게 '경고'를 보낸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닫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치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부 '닭들의 행성' 제목뿐 아니라 '치킨 프로젝트'라는 다소 흥미로운 소재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왜 '닭들의 행성'이란 타이틀을 붙였을까.  '치킨 프로젝트' 역시 맥을 같이 한다. 프로젝트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자못 심각하기까지 하다.  "치킨 프로젝트는 영국 레스터 대학교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인류세의 관점에서 닭에 대해 전방위적 연구를 하는 것"이라며 "2008년 AI(조류인플루엔자)로 약 1000만 마리의 식용 닭이 살처분돼 대한민국 국토에 매립됐는데 조건이 맞는다면 인류세의 화석이 이 땅에서 나올 수도 있겠다"라고 이야기한다.

 

반면, 2부 '플라스틱 화석'은 내용면에서 다소 충격적이다. 바다거북의 배에서 플라스틱이 나오는가 하면, 이역만리 떨어진 북태평양 해변에서 한글이 적힌 폐플라스틱이 발견된다. 다큐를 보는 내내 '정말 저렇게 심각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촬영 현장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단다.

 

다큐 3부 '안드레의 바다' 주 촬영지인 인도네시아 '붕인섬'의 모습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초지도, 공터도 없이 집과 길만 있는 빽빽한 이 섬은 외부에서 공수하는 물품들 때문에 '쓰레기섬'이 돼 가고 있었다. 무심코 스칠 수 있는 단어 하나, 장면 하나가 다큐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 닭들의 행성(feat 인간)

 

갈루스 갈루스 도메스티쿠스(Gallus gallus domesticus), 들에서 살던 붉은 들닭은 5000년 전 인간의 가축이 된 이후 인류를 따라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강한 다리, 넓은 가슴, 질량으로만 보면 전체 조류를 압도하게 된 닭. 미래의 후손들이 지구를 탐험하고 그 압도적인 개체수로 인해 '닭들의 행성'이라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르는 닭의 번성을 주도한 건 '인간'이다. 

 

인간에 의해 변형된 닭은 1950년대에 비해 무려 5배나 빨리, 더 크게 성장한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5, 6주 무렵 도살된다. 한 해 도살되는 개체수만 해도 650억 마리이다. 닭들의 행성이라 명명될 수 있을 정도로 번성하지만, 그 번성은 닭의 '고난'이다. 심지어 2008년 한 해에만 천만 마리가 도살되는 일이 벌어지듯, ‘AI, 조류독감’은 인간과 함께하여 겪게 된 고난의 또 다른 면이다. 그렇게 이르게 도살되어 사라진 청소년 닭들은 전 세계 쓰레기장에서 화석이 되어가는 중이다. 

 

2018년 유엔 생명다양성 회의에서 등장한 '핑크 프로젝트'. 닭을 핑크색으로 상징시킨 이 프로젝트는 먼 훗날 우리 시대의 지질층이 핑크색이 될 거라 예언한다. 우리나라에서만 하루 250만 마리가 소비되는 닭. 인류 문명과 함께 번성하고, 번성한 만큼 사라져 가고 있는 닭을 상징하는 핑크색 지질층의 시대, 다큐가 말하는 '인류세'이다. 

 

지금까지 지구는 다섯 번의 생물 멸종을 겪었다. 빙하기로 인한 고생대의 멸종, 이은 데본기의 멸종, 가장 피해가 컸던 페름기 대멸종, 파충류의 대부분이 멸종했던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우리에게 익숙한 백악기의 공룡 멸종, 그리고 이제 여섯 번째 멸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학자들은 경고한다.

 

그 여섯 번째 멸종은 인류의 번성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의 멸종과 달리, 한 종 즉 지구 역사상 존재했던 가장 강력한 종이 지구환경 전체를 바꾸는 시대이다. 그래서 최근 1만여 년 전부터의 '홀로세'와 구분하여 '인류세'라 명명되어야 한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 멸종의 시대, 인류세

 

인류세를 공식적으로 처음 쓴 사람은 폴 크리천이다. 대기학자였던 그는 이산화탄소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지구의 변화에 주목했다. 인간이 스스로 명명한 시대 ‘인류세’, 인류세의 시작을 학자들은 1950년 원자폭탄 폭발 이후부터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불과 70년, 지질학적 관점에서 보면 번개가 치듯 짧은 순간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인류는 그 이전의 지구 멸종기에 맞먹는 멸종의 시대를 펼쳐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이래 지구 생물 중 97%가 인간과 가축이 되었다. 야생의 생물들은 불과 3%에 불과하다. 자이언트 판다, 침팬지, 아시아 코끼리, 기린, 얼룩말, 안 테스 플라밍고, 펠리컨이 대멸종의 길에 들어섰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강치, 늑대, 표범, 크낙새 등이 이미 멸종했다. 학자들은 금세기 말에 지구에 있는 종의 반이 멸종될 거라 경고한다. 매머드, 디프로토돈, 일본 늑대 등 대형 척추동물의 멸종이 인류세의 ‘시그널’이다. 

 

동물들은 어떤 식으로 사라져 가는 걸까? 말레이시아 팜오일 농장에선 25년 정도 된 나무들을 자르고 새 묘목을 심는다.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여 기존의 숲이 사라진다. 그 숲의 자리에 팜유 농장이 들어선다. 그 과정에서 오랑우탄이 서식지를 잃는다. 인간과 생존권을 놓고 갈등하는 악어라고 해서 멸종의 파고를 피할 길이 없다. 한약재로 인기가 높은 비단뱀이라고 다를까. 제 아무리 멸종위기 동물들의 유전자를 보관하여 보존하려 해도,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번성을 위한 자연 파괴는 멈춰지지 않는다. 

 

인도 델리, 빛의 축제 디왈리가 한창이다. 어둠을 밝히며 인류가 시작되었음을 자축하기 위해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에 500만 kg의 불꽃들을 쏘아댄다. 그다음 날 대기오염은 AQI(Air Quality Index) 2000을 넘어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폭죽을 쓰지 못하게 하지만 이 디왈리 축제 동안 경기가 활발해지고 매출이 올라가자 멈출 수 없었다.

 

다큐는 이 멈출 수 없는, 아니 멈추려 하지 않는 인도 디왈리 축제가 여섯 번째 멸종을 향해 질주하는 인류세의 인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례라 한다. 강력하고도 큰 영향력을 가진 인류, 그들에 의해 다가올 멸종의 시대 '인류세'는 그저 인류가 번성하고 압도하는 시대가 아니다. 다큐는 ‘인류세’를 통해 인류가 자행하는 멸종을 엄중하게 경고한다. 여섯 번째 멸종의 시대, 그렇다면 과연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류세

방송을 접한 이들이 깊은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던 건, 암울한 미래를 만드는 데 지금의 나도 일조하고 있다는 자책감 때문이 아닐까. '치킨'이 우리 야식의 대명사가 된 지는 오래다. 오늘 밤에도 누군가는 앱을 통해 치킨을 주문할 것이다. 또 코로나 19 확산으로 배달음식계가 호황을 맞으면서 그 과정에서 쓰이는 플라스틱은 매일 산더미처럼 어딘가에 쌓이고 있다. 그 플라스틱은 바다를 오염시키는 주범이며 혼탁해진 바다는 우리의 미래와 같이 암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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